2024년은 꽁꽁 얼어붙은 채용 시장에서 개발자가 되고자하는 싸움이었다.
작년 회고록을 쓸 때만 하더라도, 올해엔 1년차 개발자로 1인분으로 일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자로 취업은 실패하였다.
지금 기억을 가지고 다시 개발자 공부를 하기 전으로 간다면 진지하게 할지 말지를 고민해 볼 것 같다.
해 뜨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매일매일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취업이 잘 안됐기 때문이다.
1. 항해 취업코스
연초에 기필코 취업을 하고자 항해 교육과정에 들어갔다.
항해 취업코스는 코어타임이 있지만 온전히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교육과정이었다.
말 그대로 취업을 위한 코스여서 주어진 과제 및 프로젝트의 난이도가 높았고, 이로인해 러닝커브가 상당히 높았다.
원래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녹이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놈의 MSA...
재밌던 것은 주간 타이머를 이용해 학습랭킹을 매기는 시스템이었다.
공부한 시간을 주 단위로 랭킹을 매겼는데 100명의 교육생 중 적어도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최상위에 들고자 했다.
이유는 실력이 모자라면 열심히라도 해야한다라는 단 한가지 마음 때문이었다.
대체로 주간 100~110시간의 공부시간을 달성했다. 이는 일주일로 나누면 하루 14~15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를 한 셈이었다.
더불어 5km 매일 달리기를 통해 정신력을 강화했다.(작년 회고록에도 적힌)
하지만 이렇게 만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로도 서류 합격률은 0 이었다.
(더욱이, 100일 달리기 성공 이후 슬개건염으로 다리를 다쳐 한 달 정도 걷지를 못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다보니 컨디션이 안 좋은 채로 뛴 게 원인이지 싶다.)
2. 인턴
그렇게 지원서가 100개가 넘어가고 있음에도 단 하나 서류를 붙지 못했고, 원인을 분석하고자 포트폴리오를 웹으로 변경했다.
방문통계를 확인해보니 포트폴리오 조회수가 고작 한자리 수밖에 되지 않았다.
즉, 서류에서 (나이와 학력으로) 이미 걸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반기동안 보지 않을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시간을 썼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자괴감이 들었다.(물론 그럼에도 지원은 멈추지 않았다.)
원래도 합격할 친구가 개발자 과정을 들어서 취업을 하는 것 뿐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긴 싫었다. 개발은 여전히 재미있었으니까.
눈을 돌려 인턴의 기회라도 잡아보고자 보이는 것은 전부 지원했다.
물론 이마저도 대부분 떨어졌지만 딱 한 군데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미래내일 일경험이라는, '3개월 일경험 인턴'에 붙었다.
4대보험이 들어가지 않아 경력 인정도 되지 않고, 급여도 140 남짓이지만 그래도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꽤 열심히 했다. 많은 부분을 배우고, 주도적으로 회의하고 개발하며 개발자가 잘 맞다 생각했다.
단지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
개발자를 실력으로 판단한다지만 신입은 "전혀" 아니다. 이걸 개발공부를 하기 전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ㅠ
채용 공고가 100개라면, 학력무관은 8~9군데 정도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경력자만큼의 실력을 원하는 곳이 5군데 정도 되고, 나이까지 보지 않는데는 아예 없다.
여태 봐보니 30대 중반인데 개발자가 되는 케이스는 두가지 인 것 같다.
1) 기존 회사 경력으로 '도메인 지식'이 있다면, 그쪽 계통의 개발자로 취업하는 것 또는 2) 창업이다.
유튜브의 개발하는 약사 님이 그랬고, 다른 직종에서 개발자로 취업하신 진유진님(커리어세션 회고 글)이 그랬다.
아니면 뻥튀기SI...
3. 자격증과 대학교 입학
뻥튀기 SI는 익히 들었다. 양심을 속이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관행이라도 하고 의견이 분분하고 말이 믾았다.
내 상황은에서 여유롭게 뭘 선택할 수 있지는 못했다.
작년 올해 합쳐 300개 넘는 서류탈락을 겪다보니 이 기회라도 잡아야만 했다.
고졸이면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뻥튀기라도 들어가서 개발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기능사가 있다면 IT 실무경력 4년이 있으면 기사 시험 볼 자격이 되었다.
다행히 예전에 따놓은 기능사가 있었고, 연초부터 미리 정보처리기사를 준비했다.
1년에 시험이 3번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했음에도 하반기가 되어서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sqld도 같이 취득했다.
그리고 학벌의 컴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했다.
'거의 무직'인 입장에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 것이 부담됐지만, 개발공부의 깊이를 위해서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취직준비+자격증+대학을 병행했는데... 몸이 점점 맛이가기 시작하더니 대상포진에 걸렸다.
그렇다. 난 20대가 아니었다.....
4. 뻥튀기 SI 제안
일경험 중인 인턴에서는 대놓고 정규직 채용 생각이 없다고 했다.
대신, 다른데 지원하면 이력서나 면접 피드백을 해준다고 했다.아니 그럴거면 채용을 해주지....
희망고문 하느니 차라리 낫다 싶었다. 그래도 기사와 sqld 를 땄으니 서류 합격은 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 여러군데를 지원했지만 현실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뻥튀기 SI회사 두 군데 면접 기회가 있었고, 두 군데 모두 면접 이후 귀신같이 연락이 두절 되었다.
일경험이 끝나가는 중이라 우째야 하나 싶었는데, 인턴하는 회사에서 좋게 봐주셨는지 SI 프로젝트 투입 제안이 왔다. 무려 5년차 개발자로 뻥튀기...
막상 제안이 오니 잠깐 갈등 때리긴 했지만 일단은 어떻게든 기회를 잡기로 했다.
거의 처음으로 기회가 주어진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 달째 갑 회사에서 계속 프로젝트가 지연된다며 결국 무산되었다.
불경기는 불경기인가보다.
5. 농협 최종탈락
이쯤되니 멘탈이 거의 다 나갔다.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짜피 학벌을 다 본다면, 아예 블라인드로 공채가 열리는 곳을 지원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 은행권 공채를 비롯한 모든 블라인드 채용에 지원했다.
기업/국민/농협 에 서류 합격했고, 코테를 한참 손 놓다보니 감이 떨어졌었기에 기업/국민은 코테에서 떨어졌다.
반면 농협에서는 코테에 붙었다.
단지 이것은 시작일 뿐, 농협은 서류->인적성->코테-> 필기(NCS+논술)->면접 이라는 무시무시한 전형이 기다렸다.
특히 필기(NCS+논술)가 어렵다고 하여 준비를 많이 했다.
인생에 없던 NCS와 평생 해본적(?) 없는 논술고사를 위해 한 달 반 정도 올인하느라 정말 힘들어서 죽을뻔 했다.
운이 좋게도 이 필기에 합격하여 최종 면접에 가게 되었다.
문제는 방통대도 여전히 하고 있었는데다가 과제와 시험이 겹쳐서 정말 너무 정신이 없었다.
면접 또한 힘들었다. 모든 은행사들이 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면접전형은 힘들긴 하다.
어떤 곳은 1박 2일로 보는 곳도 있고(끝나고 면접관들과 밥도 먹는다고 한다.), 천안 연수원에 가서 보는 곳도 있고 뭐 그렇다.
농협은 다행히(?) 약 5시간동안 PT면접+토론면접+다대다 면접을 하는 원데이 면접이다.
살면서 이렇게 하루에 면접을 빡세게 본 경험이 없었는데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이었고, 처음으로 면접비도 받았다.
게다가 면접도 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최종적으로는 탈락 했다.
농협은 농협만의 특성이 있는데, 떨어지고 수없이 복기하다보니 나중에 그걸 알게 되었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이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마지막 기회인데 놓친 것이 너무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쁘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특별한 것 없이 2024년이 마무리되었다.
거진 2년간 개발 공부를 하고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렸지만, 생각보다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2년의 공백동안 돈도 다 떨어져서 개발용으로 사용하던 맥북도 팔고 비싼 자전거를 비롯하여 집안의 많은 것들을 다 팔았다.
무엇보다 기다려 준 와이프에게 너무 미안했다.
+ 친구와의 만남
심적으로 지쳐서 다 때려치고 돈이나 많이 버는 일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좁혀져 푸념할 겸 오랜만에 ㅂㄹ친구에게 연락했다.
그랬더니 자기 일하는데 한 번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원래 요리사였던 이 친구는 요리사를 때려치고 한 1년 전부터 마트에서 고기 파는 일을 한다.
물론 듣기만 했고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이 친구 성격이 트리플 A형인건 고딩때부터 봐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막상 찾아가서 보니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다른 모습이었다. 랩퍼마냥 쉴세없이 숨도 안쉬고 큰 소리로 고기를 팔고 있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봐서 놀라움을 느꼈고, 이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친구의 성격을 잘 알기에 얘가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보여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잠깐 쉬는 시간이 되자 친구가 대강 일에 대해 알려줬고, 처음엔 자기도 정말 힘들었었다고 했다.
그래도 너 정도면 금방 배워서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물론 나는 나서는 일도 곧잘 해왔으니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에 비해 뭘 노력한 건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이 친구는 자기가 선택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과를 이뤘는데, 나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봤자 포기하고 돈이나 많이 벌고자 선택한 곳이 아닐까.
일단 주말동안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오는데 방통대 성적이 나왔다.
한학기 성적이긴 하지만 전공 4.38, 종합 4.18 이었다. 꽤 잘 받은 느낌이었다.
이 성적을 보니 뭔가 아깝다는 생각과, 관두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밤새워 고민한 끝에, 조금만 더 도전 해보는 것으로 결정하고 친구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연말과 새해맞이
그렇게 연말부터는 닥치는대로 이것저것하려 하고 있다.
노가다 수준의 태블릿 수천개 작업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LLM 관련 프리랜서 일도 조금씩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연락은 없다.
회사 맞춤형 이력서를 쓰는데 몇시간씩이나 소모되므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않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다.
올해 농협을 준비하며 NCS, 논술, 면접, 농업 공부를 많이해서 관련 지식이 꽤 생겼다.
농협 최탈이면 그래도 희망은 어느정도 보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서 농협 계약직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서류합격한 상태이다. 물론 개발쪽은 아니다.
계약직에 붙으면, 다시 공채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역시 나는 공부만 하는 것보단 일하면서 병행하는게 맞는 것 같다.
온전히 개발에만 집중하며 개발 실력을 상승하는 커리어는 불가능해졌지만....
노력하면 새로운 길이 또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에도 아마 나는, 열심히 뭔가를 또 하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여권을 만들어서 해와여행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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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설명할 때 비로소 자신의 지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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